다시꽃씨되어_concept.02

2014. 12. 14. 14:57






남극에가자

2014. 12. 14. 14:54




어딘가 지칠때면 저 멀리 남극으로 가자고 아빠는 말하곤 했다.

 

 그것이 무엇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는 더욱 더 불타오르게 되었나 보다.

근데 왜 북극이 아니라 남극에 가요? 하고 물으면 북극엔 에스키모들이 살아야 되서. 그네들도 지들 먹고 살기 바쁜데, 가뜩이나 없는 밥그릇 같이 나눠먹기엔 좀 그렇잖냐. 그럼 도대체 남극엔 뭐가 있는데요 하고 물으면 대답하나 제대로 해주지도 않으면서, 아빠는 무작정 남극행을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자신의 꿈과 환상을 가득 담아 내게 선물로 준 것이 바로 나침반 하나.

얼렁뚱땅 넘어가는 나의 생일 선물이었다. 새 것도 아니고 어디선가 주워온 듯, 바늘은 조금 기울어져 있기까지 했다. 학교 나침반도 이것보단 이쁘게 생겼던데. 이걸로 도대체 뭘 하라는 건지. 게다가 나는 '북극이건 남극이건 산타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아이였기 때문에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이런건 정말이지 쓸데없다고. 아빠의 등을 노려보았다.

 

Antarctic. Antarctica. Arctic. 선생님 어째서 arctica는 없어요?

글쎄다. 어메리칸들이 워낙 예외적인걸 좋아하잖니.

 

 그 날 내 모의고사는 우울했다. 어째서 이렇게 헷갈리는 단어를 만든건지.

분명 우리가 자기네들 말을 하는게 꼴보기 싫었던거야. 아빠는 어떻게든 길게 나와 있는것이 정답인게 아니겠냐며 혀를 찼고, 나는 그냥 북극에도 그냥 a를 붙이게 해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것도 슬금슬금 올라오는 맛있는 라면냄새에 금방 사그라들었다. 냄비 받침으로 책 한권을 빼려하는데, 그 앞에 나침반이 걸터 앉아있었다. 아아 받침보다도 쓸모없는 것. 근데 넌 뭘 그렇게 가리키고 있니?

 

 다만 이리저리 돌려보아도 항상 어딘가로 향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해서, 마침내 한가지 궁금한 것이 생기게 되었다. 남극에서는 나침반이 어떻게 움직일까. 그곳을 향해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침반은 점점 어떻게 변할까. 계속 바라보기만 했던 그 목표위에 서 있게 된다면, 바늘은 도대체 어떻게 될까. 아빠는 끙끙 고민하는 척 해보더니만 자신의 파라다이스에서 나침반따위는 필요없다며 손사레쳤다. 자기가 가져와놓고는 정작 필요 없을거라니. 그 머릿속에서는 북극곰과 남극펭귄이 사이좋게 손잡고 뛰어놀고 있을테지! 남극행 왕복 비행기표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아빠에게 선물해주고 싶어졌다. 그 남극은 생각했던만큼 그렇게 좋은 곳은 아닐거야. 이곳에서 밤새 일하고 굽신거리는 것처럼 허리를 굽혀 동물내장을 꺼내고 밤새 썰매개들을 지키고 서 있어야 할 거라고. 집에서 밥도 못하는데 남극에서는 뭘 먹을 수 있기나 할까. 바다사자의 배를 갈라 새들을 넣고 숙성시켜 그 뒷문으로 즙을 빨아먹는다는 요상한 음식이나 먹게 되겠지. 만약 정말로 아빠가 남극에 간다면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준비물은 엄마다. 하지만 엄마는 추위는 질색하는 사람이여서 한 여름에도 춥다고 난리니, 같이 갈 일은 없을 터. 아빠는 결국 그곳에서도 온종일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게 될거다. 결국 그런 아빠를 위해 라면에 얹어먹을 김치도 택배로 보내줘야 하는데 그게 도착할때쯤이면 새 김치도 묵은 김치가 될 게 뻔했다. 그리고 아빠가 그 곳에 가버린다면 누가 아침에 일어나 전기장판 전원을 꺼주고, 바가지에 따뜻한 물을 받아두고, 칫솔에 치약을 이쁘게 발라놓겠는가. 정말이지 여러모로 귀찮아지는 일이 많아서, 내심 아빠가 남극에 가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만 새벽에 소주냄새를 풀풀 풍기며 내 방에 무작정 뛰쳐들어와 십년후엔 꼭 그 곳으로 가족여행을 가자아- 조를 때에는 꾹 자는 척을 해야 했지만 말이다.

 

 정말, 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과학선생님의 안경은 번쩍이며 내게 속삭였다. 극 가장 끄트머리에 가게 되면 나침반은 혼란스러워서 이리저리 미친듯이 흔들리게 된다고. 나는 알지못해도 되는 질문을 한 것이다. 남쪽을 향하는 바늘을 따라 그 남극에 도착하는 순간, 정작 나침반은 쓸모없는 고철덩이가 되어버린다니. 

아아. 아빠는 그곳에 가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었다. 파라다이스는 발 디딛는 순간, 파라다이스가 아니게 된다. 남극에 괜히 a가 붙은게 아니였다. 아니 사실 미안해서 a를 붙여준건지도 모르겠다. 그 곳이 새하얀 얼음나라가 아닌, 이곳과 다름없는 시멘트와 철근이 들어서기 시작한 곳이라는 걸 본 순간. 그 바늘은 흔들리다 못해 똑 떨어져나가 저 바닷속에 영영 가라앉고 말거다. Kore-a Americ-a Antarctic-a, 아니, 여기도 똑같다니! 하고. 지구에서 가장 높다고 생각한 곳조차 별 것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빠는 울상을 짓겠지. 아니 왜 그러게 어째서 북극에 가자고 하지 않았어요. 북극은 대륙이 아니라잖아요. 아빠. 그 많은 에스키모들한테 아빠 한 명 얹혀 산다고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거기가 훨씬 공기도 좋을텐데. 게다가 걔넨, 짤릴 회사도 없잖아요.

 

그러므로 아직 남극행 왕복 비행기가 아직 팔리지 않는 한, 아빠의 꿈은 나침반 속 바늘에 콕콕 박혀 영원히 남극을 가리키게 될 것이다. 저 얼음 속에서 꿈과 환상들은 층층이 퇴적되어 더욱 더 단단하고 아름다운 결정체가 될거라고. 크리스마스날 산타가 내게 줄 초코파이 한 상자와 그걸 포장하다가 들켜버린 아빠의 어리숙함. 그것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그때부터 그의 동심만은 꼭 지켜주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린맘의 기만으로 나침반을 저 깊은 서랍 속 구석까지 밀어넣었다. 나의 산타클로스는 아빠가 되었으나, 아빠의 남극은 영원히 남극이 되리라.

 

 

 

-

이야 또 나오네. 저것 좀 봐라. 인제 저기서도 이층집에 케이블보면서 놀 수 있겠네. 좋네 좋아. 인간이란게 참 대단하긴 허네! 이거 죽기전에 저기서 우주까지 한번 가야쓰겄는데. 딸내미야, 효도 한번 해봐라. 며칠 뒤 아빠는 내가 전혀 모르던 대범함으로, 우주 정거장에 별장을 짓고 있었다. 양복을 이쁘게 접어 다리는 그 뒷 모습을 보며 나는 또 궁금해졌다. 아빠의 나침반만은 그곳에서도 수직으로 꼿꼿이 서서 남극을 가리키고 있지 않을까? 마침내 빨간 바늘은 우주를 향해 파란 바늘은 남극을 향해, 끝없이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그렇기에 그의 나침반은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을거라고. 또 다시 묻는다면 아빠는 파라다이스엔 그런 딱딱한 물건 따윈 필요없다고 하겠지만. 다시 한번, 나침반을 꺼내보고 싶어졌다.

 


그 겨울의 기억

2014. 12. 14. 14:50

셀프에세이 '그'.2

2014. 12. 14. 14:49


그의 반쯤 감긴 눈을, 나는 항상 놀려댔다.

 

명절마다 만나곤 했던 삼촌은 항상 자다 일어났다. 머리가 부시시했고 담배냄새가 찌든 츄리닝을 걸치고 있었다. 그때마다 얄궂은 초등 저학년은 놀려대곤 했던 모양이다.

"삼촌은 맨날 자는 거 같아."

그 눈이 하하 웃느라 감긴다. 감기약을 먹어서 그렇다고 웅얼거리는 말에 나는 절대 감기약을 먹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다만 그 감기약이라는 것이, 선택적 세로토닌 어쩌구라는 알지도 못할 긴 이름을 가진 항우울제인 것을 알지도 못하고 말이다. 그저 '삼촌'들은 다들 그런가 보다 하고. 조카가 오면 과자 한 봉지 사오는 게 삼촌이 하는 일이구나. 담배가 무슨 맛이냐고 물을 때 마다 피어보라고 거침없이 내밀던 삼촌을. 뒷산에 갔다가 함께 모기밥이 되어 돌아왔던 삼촌을. 엄마의 형제들 중에서 가장 인물이 훤칠한 삼촌을, 가장 좋아하는 수밖에.

 

그때만해도 어른들은 자신들만의 것을 너무나 잘 숨기곤 했다.

우연히 내가 찾아내었던, 그것들은 책상 가장 오른쪽에 꽂혀있었다. 그 졸린 눈으로도 용케 잠들지 않고 적었구나. 감탄했다.

다만 수첩 속 그 이해할 수 없던. 도저히 알 수가 없었던 것들. 그리고 그에 대해 다른 누구에게 물어 볼 수조차 없었던 것들.

그것을 보고 나는 너무나 불안해서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삼촌이 비디오 대여점에서 돌아오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세일러문과 곰돌이와 그밖의 것들을 꼭꼭 쟁여놓았다. 여는 순간 깜짝 선물처럼 튀어나와 그를 기쁘게 해주기를. 그의 활짝 웃는 얼굴을 볼 수 있기를.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그에 대한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며칠, 몇주일, 몇달, 그리고 몇년 뒤, 마침내 그것이 유년시절의 기억쯤으로 잊혀질 때가 되어서, 그는 자살했다.

혹시 못 본것이 아닐까? 그는 보았을까? 내 낙서가 그 묵묵히 쌓아놓은 생각들을 무작정 쪼개버린 것은 아닐까. 만약 그랬다면 그는 화냈을까 아니면, 웃었을까...도대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삼촌에 대해 묻는다면 엄마는 집안에서 가장 인물이 좋았던 것도 공부를 가장 잘했던 것도 삼촌이였다며 화부터 낸다. 정작 대학에 가고 싶었던 건 엄마였기 때문이다. 여자였던 탓에 그 값진 희생을 했는데도, 삼촌은 '아까운 걸 내쳐버린 천하의 나쁜 놈'이 되버린 것이다. 그 '나쁜 놈'은 영특한 머리탓에 초등학생때부터 전교조선생의 뒤를 쫑쫑 따라다니며 이른바 사상공부를 했다. 거기서 쑥쑥 자라나 운동권 학생이 되어버린 그는 80년 광주에도 빠짐없이 있었다. 다만 십대의 그는 싸이렌소리에 너무나 잠들지 못했고 너무나 잘 숨어다니고 너무나 잘 도망다녔기 때문에, 국가유공자라는 타이틀조차 얻지 못했다. 가족들은 그를 '바로' 잡기 위해 차례로 줘패버리기도 하였으나 고놈이 싹 돌아서기만하면 빨갱이처럼 타도자본주의를 외쳤다고. 참 헛똑똑이였다 하는 엄마의 말에 나는 그저 멍하니 엄마가 깎는 사과를 바라보기만 했다. 사과를 다 깎기 전까지도 나는 아무말 할 수 없었다. 번쩍번쩍하고-그 '나쁜 놈'의 눈은 어둠속에서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나쁜놈'은 내가 알고 있던 삼촌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였다.

 

그리고 그가 온 젊음을 토해 바쳤던 것들은 시간이 흐르자 너무나 당연한듯 다가왔다. 난 너무나 당연한 듯 쇼파에 누워 사과를 먹으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그는 사과나 먹으면서 이야기되는 전 세대가 되어있었다. 

 

그는 대졸이라는 학력으로 가구공장에 취직했으며, 인원감축으로 짤릴 수밖에 없던 동료를 보며 자본주의 개나 줘버리라고 날뛰었고, 마찬가지로 짤려서 여기저기를 전전하게 되었으나, 엄마의 성화에 마지못해 교회에 끌려가서 사회생활을 연습해보았고, 마침내 미혼의 서른총각이 되어버렸으며, 결국엔 명절마다 하릴없이 조카들을 봐주는 삼촌이 되어버렸다. 사실 그 날 빌려온' 헐리우드' 명화 타이타닉을 보며, 그의 표정은 어떠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귀찮게 구는 조카놈을 이번에야말로 얌전히 만들 심산이였는지. 타이타닉은 너무나 크고 거대했기 때문에 테이프가 상중하 세개나 되었다. 게다가 빙산 또한 너무나 거대했던 탓에 초등 저학생인 나는 결국 잠들 수 밖에 없었는데, 사람들은 한국에 상륙한 타이타닉을 향해 깃발을 흔들며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고  빙산을 타고 온 엄마는 사과를 깎아 삼촌에게 건네주었다. 삼촌은 사과를 맛나게 먹으며 티비를 보고 알록달록한 감기약들은 바다속에서 헤엄쳤다. 분명 비디오가 다 닳아 깜깜해졌는데도 도대체 어디를 그렇게 보고 있는건지.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도 모르지. 밖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너무도 어두웠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끝까지 응시하고 있는 절대 감기지 않던 그 졸린 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