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에세이 '그'.2

2014. 12. 14. 14:49


그의 반쯤 감긴 눈을, 나는 항상 놀려댔다.

 

명절마다 만나곤 했던 삼촌은 항상 자다 일어났다. 머리가 부시시했고 담배냄새가 찌든 츄리닝을 걸치고 있었다. 그때마다 얄궂은 초등 저학년은 놀려대곤 했던 모양이다.

"삼촌은 맨날 자는 거 같아."

그 눈이 하하 웃느라 감긴다. 감기약을 먹어서 그렇다고 웅얼거리는 말에 나는 절대 감기약을 먹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다만 그 감기약이라는 것이, 선택적 세로토닌 어쩌구라는 알지도 못할 긴 이름을 가진 항우울제인 것을 알지도 못하고 말이다. 그저 '삼촌'들은 다들 그런가 보다 하고. 조카가 오면 과자 한 봉지 사오는 게 삼촌이 하는 일이구나. 담배가 무슨 맛이냐고 물을 때 마다 피어보라고 거침없이 내밀던 삼촌을. 뒷산에 갔다가 함께 모기밥이 되어 돌아왔던 삼촌을. 엄마의 형제들 중에서 가장 인물이 훤칠한 삼촌을, 가장 좋아하는 수밖에.

 

그때만해도 어른들은 자신들만의 것을 너무나 잘 숨기곤 했다.

우연히 내가 찾아내었던, 그것들은 책상 가장 오른쪽에 꽂혀있었다. 그 졸린 눈으로도 용케 잠들지 않고 적었구나. 감탄했다.

다만 수첩 속 그 이해할 수 없던. 도저히 알 수가 없었던 것들. 그리고 그에 대해 다른 누구에게 물어 볼 수조차 없었던 것들.

그것을 보고 나는 너무나 불안해서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삼촌이 비디오 대여점에서 돌아오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세일러문과 곰돌이와 그밖의 것들을 꼭꼭 쟁여놓았다. 여는 순간 깜짝 선물처럼 튀어나와 그를 기쁘게 해주기를. 그의 활짝 웃는 얼굴을 볼 수 있기를.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그에 대한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며칠, 몇주일, 몇달, 그리고 몇년 뒤, 마침내 그것이 유년시절의 기억쯤으로 잊혀질 때가 되어서, 그는 자살했다.

혹시 못 본것이 아닐까? 그는 보았을까? 내 낙서가 그 묵묵히 쌓아놓은 생각들을 무작정 쪼개버린 것은 아닐까. 만약 그랬다면 그는 화냈을까 아니면, 웃었을까...도대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삼촌에 대해 묻는다면 엄마는 집안에서 가장 인물이 좋았던 것도 공부를 가장 잘했던 것도 삼촌이였다며 화부터 낸다. 정작 대학에 가고 싶었던 건 엄마였기 때문이다. 여자였던 탓에 그 값진 희생을 했는데도, 삼촌은 '아까운 걸 내쳐버린 천하의 나쁜 놈'이 되버린 것이다. 그 '나쁜 놈'은 영특한 머리탓에 초등학생때부터 전교조선생의 뒤를 쫑쫑 따라다니며 이른바 사상공부를 했다. 거기서 쑥쑥 자라나 운동권 학생이 되어버린 그는 80년 광주에도 빠짐없이 있었다. 다만 십대의 그는 싸이렌소리에 너무나 잠들지 못했고 너무나 잘 숨어다니고 너무나 잘 도망다녔기 때문에, 국가유공자라는 타이틀조차 얻지 못했다. 가족들은 그를 '바로' 잡기 위해 차례로 줘패버리기도 하였으나 고놈이 싹 돌아서기만하면 빨갱이처럼 타도자본주의를 외쳤다고. 참 헛똑똑이였다 하는 엄마의 말에 나는 그저 멍하니 엄마가 깎는 사과를 바라보기만 했다. 사과를 다 깎기 전까지도 나는 아무말 할 수 없었다. 번쩍번쩍하고-그 '나쁜 놈'의 눈은 어둠속에서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나쁜놈'은 내가 알고 있던 삼촌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였다.

 

그리고 그가 온 젊음을 토해 바쳤던 것들은 시간이 흐르자 너무나 당연한듯 다가왔다. 난 너무나 당연한 듯 쇼파에 누워 사과를 먹으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그는 사과나 먹으면서 이야기되는 전 세대가 되어있었다. 

 

그는 대졸이라는 학력으로 가구공장에 취직했으며, 인원감축으로 짤릴 수밖에 없던 동료를 보며 자본주의 개나 줘버리라고 날뛰었고, 마찬가지로 짤려서 여기저기를 전전하게 되었으나, 엄마의 성화에 마지못해 교회에 끌려가서 사회생활을 연습해보았고, 마침내 미혼의 서른총각이 되어버렸으며, 결국엔 명절마다 하릴없이 조카들을 봐주는 삼촌이 되어버렸다. 사실 그 날 빌려온' 헐리우드' 명화 타이타닉을 보며, 그의 표정은 어떠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귀찮게 구는 조카놈을 이번에야말로 얌전히 만들 심산이였는지. 타이타닉은 너무나 크고 거대했기 때문에 테이프가 상중하 세개나 되었다. 게다가 빙산 또한 너무나 거대했던 탓에 초등 저학생인 나는 결국 잠들 수 밖에 없었는데, 사람들은 한국에 상륙한 타이타닉을 향해 깃발을 흔들며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고  빙산을 타고 온 엄마는 사과를 깎아 삼촌에게 건네주었다. 삼촌은 사과를 맛나게 먹으며 티비를 보고 알록달록한 감기약들은 바다속에서 헤엄쳤다. 분명 비디오가 다 닳아 깜깜해졌는데도 도대체 어디를 그렇게 보고 있는건지.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도 모르지. 밖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너무도 어두웠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끝까지 응시하고 있는 절대 감기지 않던 그 졸린 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