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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가자
2014. 12. 14. 14:54어딘가 지칠때면 저 멀리 남극으로 가자고 아빠는 말하곤 했다.
그것이 무엇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는 더욱 더 불타오르게 되었나 보다.
근데 왜 북극이 아니라 남극에 가요? 하고 물으면 북극엔 에스키모들이 살아야 되서. 그네들도 지들 먹고 살기 바쁜데, 가뜩이나 없는 밥그릇 같이 나눠먹기엔 좀 그렇잖냐. 그럼 도대체 남극엔 뭐가 있는데요 하고 물으면 대답하나 제대로 해주지도 않으면서, 아빠는 무작정 남극행을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자신의 꿈과 환상을 가득 담아 내게 선물로 준 것이 바로 나침반 하나.
얼렁뚱땅 넘어가는 나의 생일 선물이었다. 새 것도 아니고 어디선가 주워온 듯, 바늘은 조금 기울어져 있기까지 했다. 학교 나침반도 이것보단 이쁘게 생겼던데. 이걸로 도대체 뭘 하라는 건지. 게다가 나는 '북극이건 남극이건 산타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아이였기 때문에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이런건 정말이지 쓸데없다고. 아빠의 등을 노려보았다.
Antarctic. Antarctica. Arctic. 선생님 어째서 arctica는 없어요?
글쎄다. 어메리칸들이 워낙 예외적인걸 좋아하잖니.
그 날 내 모의고사는 우울했다. 어째서 이렇게 헷갈리는 단어를 만든건지.
분명 우리가 자기네들 말을 하는게 꼴보기 싫었던거야. 아빠는 어떻게든 길게 나와 있는것이 정답인게 아니겠냐며 혀를 찼고, 나는 그냥 북극에도 그냥 a를 붙이게 해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것도 슬금슬금 올라오는 맛있는 라면냄새에 금방 사그라들었다. 냄비 받침으로 책 한권을 빼려하는데, 그 앞에 나침반이 걸터 앉아있었다. 아아 받침보다도 쓸모없는 것. 근데 넌 뭘 그렇게 가리키고 있니?
다만 이리저리 돌려보아도 항상 어딘가로 향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해서, 마침내 한가지 궁금한 것이 생기게 되었다. 남극에서는 나침반이 어떻게 움직일까. 그곳을 향해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침반은 점점 어떻게 변할까. 계속 바라보기만 했던 그 목표위에 서 있게 된다면, 바늘은 도대체 어떻게 될까. 아빠는 끙끙 고민하는 척 해보더니만 자신의 파라다이스에서 나침반따위는 필요없다며 손사레쳤다. 자기가 가져와놓고는 정작 필요 없을거라니. 그 머릿속에서는 북극곰과 남극펭귄이 사이좋게 손잡고 뛰어놀고 있을테지! 남극행 왕복 비행기표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아빠에게 선물해주고 싶어졌다. 그 남극은 생각했던만큼 그렇게 좋은 곳은 아닐거야. 이곳에서 밤새 일하고 굽신거리는 것처럼 허리를 굽혀 동물내장을 꺼내고 밤새 썰매개들을 지키고 서 있어야 할 거라고. 집에서 밥도 못하는데 남극에서는 뭘 먹을 수 있기나 할까. 바다사자의 배를 갈라 새들을 넣고 숙성시켜 그 뒷문으로 즙을 빨아먹는다는 요상한 음식이나 먹게 되겠지. 만약 정말로 아빠가 남극에 간다면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준비물은 엄마다. 하지만 엄마는 추위는 질색하는 사람이여서 한 여름에도 춥다고 난리니, 같이 갈 일은 없을 터. 아빠는 결국 그곳에서도 온종일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게 될거다. 결국 그런 아빠를 위해 라면에 얹어먹을 김치도 택배로 보내줘야 하는데 그게 도착할때쯤이면 새 김치도 묵은 김치가 될 게 뻔했다. 그리고 아빠가 그 곳에 가버린다면 누가 아침에 일어나 전기장판 전원을 꺼주고, 바가지에 따뜻한 물을 받아두고, 칫솔에 치약을 이쁘게 발라놓겠는가. 정말이지 여러모로 귀찮아지는 일이 많아서, 내심 아빠가 남극에 가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만 새벽에 소주냄새를 풀풀 풍기며 내 방에 무작정 뛰쳐들어와 십년후엔 꼭 그 곳으로 가족여행을 가자아- 조를 때에는 꾹 자는 척을 해야 했지만 말이다.
정말, 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과학선생님의 안경은 번쩍이며 내게 속삭였다. 극 가장 끄트머리에 가게 되면 나침반은 혼란스러워서 이리저리 미친듯이 흔들리게 된다고. 나는 알지못해도 되는 질문을 한 것이다. 남쪽을 향하는 바늘을 따라 그 남극에 도착하는 순간, 정작 나침반은 쓸모없는 고철덩이가 되어버린다니.
아아. 아빠는 그곳에 가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었다. 파라다이스는 발 디딛는 순간, 파라다이스가 아니게 된다. 남극에 괜히 a가 붙은게 아니였다. 아니 사실 미안해서 a를 붙여준건지도 모르겠다. 그 곳이 새하얀 얼음나라가 아닌, 이곳과 다름없는 시멘트와 철근이 들어서기 시작한 곳이라는 걸 본 순간. 그 바늘은 흔들리다 못해 똑 떨어져나가 저 바닷속에 영영 가라앉고 말거다. Kore-a Americ-a Antarctic-a, 아니, 여기도 똑같다니! 하고. 지구에서 가장 높다고 생각한 곳조차 별 것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빠는 울상을 짓겠지. 아니 왜 그러게 어째서 북극에 가자고 하지 않았어요. 북극은 대륙이 아니라잖아요. 아빠. 그 많은 에스키모들한테 아빠 한 명 얹혀 산다고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거기가 훨씬 공기도 좋을텐데. 게다가 걔넨, 짤릴 회사도 없잖아요.
그러므로 아직 남극행 왕복 비행기가 아직 팔리지 않는 한, 아빠의 꿈은 나침반 속 바늘에 콕콕 박혀 영원히 남극을 가리키게 될 것이다. 저 얼음 속에서 꿈과 환상들은 층층이 퇴적되어 더욱 더 단단하고 아름다운 결정체가 될거라고. 크리스마스날 산타가 내게 줄 초코파이 한 상자와 그걸 포장하다가 들켜버린 아빠의 어리숙함. 그것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그때부터 그의 동심만은 꼭 지켜주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린맘의 기만으로 나침반을 저 깊은 서랍 속 구석까지 밀어넣었다. 나의 산타클로스는 아빠가 되었으나, 아빠의 남극은 영원히 남극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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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또 나오네. 저것 좀 봐라. 인제 저기서도 이층집에 케이블보면서 놀 수 있겠네. 좋네 좋아. 인간이란게 참 대단하긴 허네! 이거 죽기전에 저기서 우주까지 한번 가야쓰겄는데. 딸내미야, 효도 한번 해봐라. 며칠 뒤 아빠는 내가 전혀 모르던 대범함으로, 우주 정거장에 별장을 짓고 있었다. 양복을 이쁘게 접어 다리는 그 뒷 모습을 보며 나는 또 궁금해졌다. 아빠의 나침반만은 그곳에서도 수직으로 꼿꼿이 서서 남극을 가리키고 있지 않을까? 마침내 빨간 바늘은 우주를 향해 파란 바늘은 남극을 향해, 끝없이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그렇기에 그의 나침반은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을거라고. 또 다시 묻는다면 아빠는 파라다이스엔 그런 딱딱한 물건 따윈 필요없다고 하겠지만. 다시 한번, 나침반을 꺼내보고 싶어졌다.
그 겨울의 기억
2014. 12. 14. 14:50셀프에세이 '그'.2
2014. 12. 1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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